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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니시진에,큰 기암을 제신으로 모시는 작은 신사가 있다. 위치는 상류매통정복사 동쪽 입구에 있다. 작은 토리이(도리이)와 가미야가 있고, 신사의 이름은"이와카미 신사라고 한다.
포장마차 안에는 줄을 묶은 큰 돌이 놓여 있다.돌의 크기는 지름 1m 정도, 높이 2m가 채 안 되는 크기다.라고 할 수 있겠다. 이름 그대로,돌이라기보다는 바위이다.
큰 바위를 모시는 이와카미 신사
현지에서는 '이와카미'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그리고 이 기암에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있다.
원래는 호리카와 니조 부근에 있었다고 하는데, 니조성 축성 때 육각 부근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것이 간에이(寛永)년에 다시 중와몬인(中和門院, 고요세이 천황의 부인 중 한 명)의 궁궐 정원의 아름다운 연못가에 옮겨졌다고 한다.
그런데밤마다 그 연못 주변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더 귀를 기울이면,'돌아가고 싶다, 돌아가고 싶다'는 소리가 들린다아닌가. 의심을 품은 여관이 연못가에 다가가 보니 낯선 아이가 울며 보채고 있다. "어디서 왔어?" "어디 아이야?" "어디서 왔어?" "어디 아이야?"라고 물어도 아이는 울기만 한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여관의 보고를 받은 관원이 의심을 품고 날을 바꾸어 조사해 보니,연못가의 큰 바위가 울고 있는 것을 알았다.라고 한다.
큰 바위를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싶다'라고 중화문인은 바랐지만, 어디로 돌려보내야 할지 몰랐다. 상담한 진언종 연등원 스님이 대암을 받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모셨다. 그러자,괴이하게도 이 괴이한 현상이 멈추고, 대암을 모신 절을 '유유산 암신사'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 절은 모유수유의 신으로 믿게 되었다고도 하고, 큰 바위가 아이의 모습으로 변해 그 바위를'가무로시'라고 불러도 좋다,수유와 육아에 효험이 있다고 여겨져 여성 참배객이 끊이지 않았다.
일설에는 오이와가 모유 수유의 신이 된 것은 오이와가 남성의 상징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오이와가 '양석(陽石)'으로, 교토에서 몇 안 되는 성신이라는 설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그 후, 교토가 불바다가 된 텐메이 대화재(1788년) 등 거듭된 큰 화재로 절은 황폐화되어 메이지 유신 때 폐사되었다. 다이쇼(大正)년에 이와카미(岩上)신사(岩上神社)로 모셔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대암에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에도시대 말기, 이 큰 바위를 모시는 이와신지 절 주변에는요괴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나 여행자와 행인을 위협했다. "이래서는 밤길을 걸을 수 없다"며 사람들은 이 바위신에게 안전을 기원했고, 요괴는 모습을 감췄다고 한다.라고 한다. 오오이와님의 은덕인지, 아니면 당시 황폐해져 가던 암신사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오오이와님이 아이로 변해 장난을 친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꽤나 장난꾸러기 같은 신이 아닐까 싶다.
이와카미 신사를 뒤로하고, 바로 동쪽에 위치한 '우보인'에 들러 이곳 역시 니시진 사람들에게 친숙한 곳임을 확인하고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이와카미 씨의 바로 근처에 있는 벚꽃 명소 우보인
헤이세이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원호(元号)시대가 열리더라도 오이와님은 '이와카미 씨'라는 이름으로 니시진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마을과 사람들을 지켜봐 줄 것이다.
교토의 거리 곳곳에 존재하는 전승. 1200여 년의 세월을 거쳐 탄생한 '마하'의 신비로운 교토의 '이'세계를 월간지 Leaf에서 '교토의 마계탐방'을 연재했던 오피스 TO의 두 사람이 실제로 그 곳을 방문하면서 풀어본다. 풀어간다.